레지오접근법

  1. 레지오를 향한 세계의 반응들
  2. 레지오 교육의 출발
  3. 시 유아교육체제 발달 요약
  4. 레지오 유아서비스 체계
  5. 레지오 학교의 조직체계
  6. 교육적 프로젝트
  7. Reggio Children
  8. 레지오 에밀리아 전시회
  9. 레지오 교육의 17가지 원칙

교육적 프로젝트

교육적 프로젝트

1. 교육 이념들의 채택

이념들을 채택함에 있어서 우리는 발생학적 구성주의와 창의적 관점을 따른다는 사실이 아마도 지금까지 분명한 것 같다. 우리는 두뇌가 한갖 유전인자들에 갇히지 않고, 사고는 환경과의 상호작용 정도에 따라 재구성됨을 믿는다. 한편, 지능은 두뇌의 각 부분들의 상호 호혜적 협동의 결과라는 것을 믿는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어린이들이 삶의 모든 언어들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을 지지한다. 이 언어들은 원천적으로 상호작용적이다. 또한 정보와 감각들을 조직하고, 의사 교환과 상호성을 구하기 위한 탐색적, 인지적 도구들로 갖추어져 있다. 그 언어들은 기호학자와 탐정의 초기적 기술과, 설명이 결여된 것들에 대해 가설을 세우고 사실들을 재구성해내는 능력을 통합한다.

Pierce의 이론이 아이들에게 적합하다; 어린이들이 필요로 하고 또한 추구하는 것은 불명료한 상태와 사물의 불명료함을 제거하는 것이다.

어린이들 사이에서 우리가 더 많은 언어들을 인식하게 될수록 우리는 그들이 활동하는 것을 더 잘 도울 수 있다. 또한 모든 학습의 상황에 적용될 수 있는 지식 구성의 과정에서의 Olson의 anomalies개념, Bateson의 differences, Piaget의 schemas 개념을 흡수하기 위한 방법론적 모델-어린이들이 사건과 경험들을 겪는 과정에서 필요로 하는-을 정의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어린이들의 프로젝트와 요구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

어린이들이 인지적 평형을 추구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부분적으로만 사실이다. 어린이들은 평형과 불평형(어린이들에게 인지적 갈등을 조장해서 그들로 하여금 그것을 극복하고 넘어서도록 자극하는)을 번갈아 즐긴다.

아주 초기부터, 호기심과 학습은 단순하고 단절된 상태에 대해 반대하는 습성을 지닌다.

어린이들은 아주 복잡한 상황들의 이치를 따지고 관계 맺는 것에 대한 강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 어린이들은 그 복잡한 상황들의 이치와 관계들을 뛰어넘어 의미를 변화시켜 보기도 하고 어린이들만의 비유, 은유, 의인화 및 현실논리적 의미들을 고안해내는 것을 추구하기까지 한다.

어린이들은 적응력과 여타 능력들의 형태를 다양하게 변화시키고, 그 수준을 높여감을 통하여 사물과 사람과 또래와 형상과 자기 자신들을 다루는 생물학적이면서 문화적인 그들만의 존재 방식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들을 위계적 발달단계 속에 가두어 놓는다거나 어린이가 자기 중심주의 애니미즘, 하찮은 마술 같은 것에 사로 잡혀 있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간주하고, 이성과 논리의 천사의 도움을 힘입어 그것들로부터 어린이를 해방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성인들의 시각은 잘못된 것이다.

아무것도 무로부터 나오지 않는다. 모든 것은 계속되고, 변화한다. 감정과 창의력, 심미감 뿐만 아니라 상상력과 논리등은 백가지의 근원과 백가지의 발생기원을 가지고 있어서 그 아무도 완벽하고 영속적이며, 변환되지 않는 발생학적 단계나 인지의 과정들을 단호히 규정함을 통한 설명방식과 예견의 절대성에 맹세할 권리를 가지지 못한다.

사고와 이성과 언어, 또한 감정들은 삶이라는 것을, 이미 수행된 행동들과 이미 만들어진 비교들로부터 또다시 끌어낼 수 있게 한다.

어린이들을 계속해서 자극하는 내적 힘이 있다. 그런데 그 내적 힘은 어린이들이 그들 삶 가운데 있는 또래나 어른들이 귀중한 자원인 것 같이 '사실과 생각들'도 그들의 자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될 때 배가된다. 어린이들이 성인의 도움과 신뢰를 필요로 하는 순간이 바로 이 시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린이들의 삶의 모험의 시작으로부터 기대되는 것들이다.

이런 것들은 어린이들이 가진 선물이다. 어린이들만의 시간흐름과 리듬은 최대한 존중되어야 한다. 어린이들을 빨리 성장하도록 서두르고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생물학적, 심리학적, 문화관계적 파괴의 징표로 현 세태에 행해지고 있는 불성실한 행태이며 골깊은 불안정과 균형의 상실의 증거이다. 어린이들은 이러한 압력으로부터 그들을 방어해줄 어른들의 지원을 필요로 한다.

물론 성장과 이윤 추구의 논리 또한 어린이들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시간과 서두름에 편중된 시각을 포기를 전제로, 그러한 성장과 이윤 추구가 삶의 풍요로움에 대한 희구와 질적인 발달에 대한 관심으로 충만하게 될 수 있을 때에야만 가능한 것이다.

Loris Malaguzzi
("어린이들의 수많은 언어" 전시회 카탈로그에서...)

2. 환경에의 권리

학교들이 그들만의 환경과 그들만의 건축물과 그들만의 공간·형태·기능의 이용과 그의 개념화의 권리를 가져야만 한다는 사실은 더 이상 논의의 여지가 없다. 이곳 이탈리아에서 교육학적 문화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학교 그 자체 뿐만 아니라 교사와 어린이들과 부모들에게 주어진 그런 권리가 인식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적다는 것 또한 명백하다. 다시 말해, 교육은 복잡다단한 상호작용의 결과로 인식되어야 하며, 그러한 인식의 상당 부분은, 환경이 완전하게 참여하는 요소가 될 때 가능하다.

교육이 심리적 문화적 왜곡의 원인이 되는, 오랜동안 지속되어온 완고한 오류(과거의 프로이트 심리학과 같은) 아래 고전하고 있다. (...)

여기서는, 환경을 교육에서의 어떤 이론적, 정치적 연구의 중요한 구성요소로 고려해 두고 있다는 정도로만 말해 두겠다. 우리는 환경 자체의 논리, 조화로운 공존을 위한 환경적 가능성과 환경의 가장 중요한 형태와 기능 등에 동등하게 가치를 둔다. 게다가 행복감과 안전감을 생성해 내는, 관계와 선택의 여지와 인지·정서적 상황을 위한 공간을 조성하는데 있어서, 자극을 제공하고 생명력을 불어넣는 원동력으로서의 환경의 역할에 광대한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환경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과, 윤리와 태도와 문화를 반영하는 일종의 수족관이 되어야 된다고 말하고 싶다. 이것은 우리가 계속해서 추구하고 있는 바이다.

Loris Malaguzzi
("어린이들의 수많은 언어" 전시회 카탈로그에서...)

3. 참여

참여는 레지오 에밀리아의 유아교육 경험에서 떼어낼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 교육 경험의 시작 자체가 일반인들의 순수한 동기로부터 비롯되었다. 2차 세계대전의 종전 이후에 지역의 주민들이 희망과 믿음으로 미래를 내다보면서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학교들을 지었다. 이 학교들의 첫 시작이 '빌라 첼라'(Villa Cella)학교였다. 이러한 시작이 레지오 에밀리아의 유아교육에서 '참여'의 요소가 두드러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참여는 미래를 위한 계획에서의 사회적 책임과 민주주의적 관심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것은 유아들을 위한 학교의 건립과 경영에 부모와 지역사회의 구성원들을 끌어들였다.

교사나 교육 행정가에게만 국한된 것도, 국한되어서도 안되며 관련된 모든 사람의 공동 책임감이 강하게 요구되는 공적 교육의 관점에서 우리 경험의 시작의로서의 '참여'는 우리 가운데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가장 혁신적인 부분이었다. 교육이 우리의 미래를 창조하는 일이라면 모든 인간이 그것의 일부라는 느낌을 가질 수 있어야 하며, 결과적으로 그것과 관계맺어질 수 있어야 한다.

교육의 과정에서 '공동 책임감'은 참여의 최고 중요한 개념이다.

레지오 에밀리아의 사회와 문화는 사회적 연대의 강한 영향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역 인구는 안정성과 연속성의 토대 위에 있다. 빠른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확대 가족에 의해 이루어지는 연계망의 지원으로 여전히 가정은 사회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영유아 센터와 유치원의 교육에서 참여를 통합하고 계속해서 유지될 수 있는 교육 여건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이 교육에서 다른 중요한 요소는, 새로운 물음을 묻고, 각 가정들의 새로운 형태와 정체성에 관련하여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다.

그래서 참여는 특별한 역사와 문화에서 시작된 것이긴 하지만, 일상의 실제에서 가정과의 연계와 상호작용으로 게속해서 새로와지며, 계속해서 살아남을 수 있게 된다.

부모들은 특히 유아들의 교육에 있어서 교육기관과의 능동적인 교류에 관한 일종의 사회적 계약같은 것이 없이 전적으로 교육기관에 어린이들을 맡겨 버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런 사회적 계약이 만들어지지 않을 때, 그것은 교육기관이 스스로 부모들을 수동적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책임감을 잃고 수동적으로 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가장 큰 위험이다.

이 위험을 제거하기 위하여 영유아센터와 유치원이 열려 있고 부모에게나 어린이들 모두에게 환영하는 공간이 되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다. 이러한 개방성은 공간이나 조직의 관점에서 보다 구체적인 제스쳐로 드러나게 된다. 그것은 단순히 예의 바름이나 호의에만 기초한 것이라기 보다 대화의 교류를 이끌어내는 관계와 상호작용의 실제에 근거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의 개념은 우리가 각 개인을 자기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와 능력들을 가진 자원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교사나 부모 어느 한 쪽에 편중되는 관계를 뛰어넘어, 상호성, 순환성, 각 개인의 기술들에 대한 가치 인식을 바탕으로 한 상호관계를 창조한다. 여기서 상호성과 순환성, 각 개인의 기술들에 대한 가치 인식은 개인차와 다양한 가치관들과 주관성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며, 이것들은 분리, 무관심, 거리감을 만들어내는 요소들로서가 아니라 각 개인이 우리의 일상적 연구에 공헌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인식으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어떤 교사나 교육 전문가, 부모도, 혼자서는 그룹의 대화를 통해 만들어내는 아이디어보다 더 많거나 더 좋은 것을 고안할 수 없다.

우리가 구하는 것은 평화적이고 건설적인, 공존의 새로운 윤리이다. 그 윤리는 어른이건 아이건 귀기울임, 개방성, 타인 인식에 근거하는 것이다. 이러한 윤리는 모두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희망과 계획에서 성인들과 어린이들을 연합하는 참여 프로젝트에서 입증된다.

파올라 칼리아리 (Paola Cagliari)
"참여; 가치, 의미, 문제, 도구"에서 발췌

# 자문위원회 #

자문위원회는 각 교육기관 고유의 문제들에 대한 연구와 토론과 의사결정을 통해 참여와 공동 책임감의 모든 과정들을 발달시키고 구체화하기 위해 고안된 문화적 조직적 기구이다. 이 과정들은 지역사회와 지역사회 조직체와 함께 하는 대화를 통해 더욱 풍요로와진다.

레지오 에밀리아의 자치하의 영유아센터와 유치원들의 자문위원회들은 일반 조정 위원회에 의해 대표된다. 이 일반 교육 조정 위원회는 지방 자치 정부와 영유아센터들과 유치원들의 교육적, 정치적, 문화적 목표들을 결정하기 위하여 함께 일한다.

1996년 12월에는 3년이 된 선거위원회가 1999년 12월까지 계속될, 영유아센터들과 유치원들을 위한 새 자문위원회 구성원들을 선출하기 위해 모였었다.

4. 조직체계

유아들을 위한 학교는 일반적으로 사회정책상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탁아나 부모·가정의 대리의무에만 종속되도록 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날 때 진정으로 시작될 수 있다. 학교는 이러한 즉흥적 행태나 질적저하(결과적으로 어린이들과 가정과 교사와 그들의 전문적 훈련과 일등의 수준 저하를 야기하는)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학교의 정체성은 의문점들을 되돌아보고 어린이들과 교사들과 가족들과 물리적 환경과 근무환경 등의 중추성과 본질 회복을 당연하게 생각함을 통해 완벽하게 구성될 수 있는 것이다. 생각은 이렇게 체계화되고 교육학적 프로젝트의 구체적인 기구는 그 자체로 이론적·과학적 틀거리와 교육의 목적의 관점에서 내용의 선ㅌ택의 표출이 된다.

우리 위원회는 항상 교육적 계획과 연구의 기반으로 일의 조직적 양상을 끌어들이려는 시도와 항상 관계맺어왔다.

다시 말해, 어린이와, 어린이의 발달과 학습의 중추성은 교사와 학교의 직원, 가정이 함께 공유하는 중추성으로부터 자라는 것이다. 학교의 환경은 건축학적으로나 기능적으로나 이러한 상호연결성과 상호작용체계를 지원하기 위해 고안되고 설계된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교직원들 각자의 고립과 가정이나 사회로부터의 고립을 일종의 감옥살이로 보며, 전문가적 성장과 각 개인의 경험과 배경으로부터의 비교에 의해 구성되어지는 개인의 지식 발달에 장애물이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고립은 가정을 생각하는 때도 약간은 자페증적이며 비생산적인 모델이고 최소한 어린이의 자발성과 사회화에도 악영향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서 다시 한 번 확실히 하고 싶은 부분은, 전통적인 고립의 교육 이론을 버리고 참여의 이론을 향해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을 통해, 그동안 사회나 일상의 근무 환경에서는 절대로 찾아볼 수 없지만, 교육이론에서는 평가절하되었던 조직화가 이제 다시 필수적이고, 역동적이며 구성적인 요소로 거듭나게 된다.

교직원들과 가정 사이의 관계들은 이러한 다차원적 형태의 상호작용과 의견교환과 대화를 통해서 강화되며 그에 의해, 교육학적, 교수적 아이디어가 형성되며 공유된다. 이 관게들은 각 학교당 하나씩 있는 자문위원회 활동을 통해 보다 강화된다. 이것은 다소 복잡한 일이긴 하나, 확실히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상 전략은 관점들과 참여활동의 다양성을 계속해서 조합해내는, 이른바 실용적 인식론을 형성하며, 어린이들의 성장과 발달과정의 삶과 학습의 형태들 뿐만 아니라 교육상의 문제점들이나 가능성들 사이의 관계가 계속해서 역동적이며 개방적인 것이 될 수 있도록 해 준다.

우리는 Faure의 유명한 (주위를 끌지 못하긴 하지만), 선언의 노선을 따르고 있다; "미래는 한 학교에서 비평의 힘, 정치적 참여, 상상력과 조직적, 문화적, 과학적, 기능적 요구들을 잘 결합하는 사람에게 속하는 것이다."

Loris Malaguzzi
("어린이들의 수많은 언어" 전시회 카탈로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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